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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벌금제란? > 벌금제,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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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벌금제에 대한 고민 6 - 43,199, 한국의 레미제라블, 장발장들의 원망이 쌓여가고 있다 등록일 2015.03.22 18:58
글쓴이 장발장은행 조회 1567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범죄자. 이 세 음절의 단어가 주는 느낌은 고약하다. 어린이·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테러범, 방화범 그리고 살인범까지, 남을 해친 고약한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범죄자는 마땅히 잘못한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 그게 정의다.  

 

평범한 시민들도 범죄자가 되고 있다. 

 

 하지만 범죄자라는 말 속에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도 숱하게 포함되어 있다. 법학 교과서는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깨뜨린, 특별히 해로운 행위를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게 상식이지만, 범죄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 얼마 전 논란이 된 <경범죄처벌법>만 봐도 그렇다. 담배꽁초 버리기, 길거리에서 침 뱉기, 구걸행위, 심지어 시끄러운 소리로 손님 모으기도 모두 범죄행위다. 단순한 기초질서 위반행위가 범죄로 처벌받는 것은 <경범죄처벌법>외에도 많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교통사고 뺑소니나 음주운전만 하지 않는다면 범죄자가 되지 않을 거라 여기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신호등의 지시를 지키지 않은 사람, 무단횡단, 차도 보행, 자동차와 마주보는 방향으로 길 가장자리를 걷지 않은 사람(자동차와 같은 방향으로 걸으면 범죄자가 된다), 보도에서 우측통행을 하지 않는 사람, 도로가 구부러진 부근이나 비탈길의 고갯마루 부근, 가파른 비탈길의 내리막에서 서행하지 않는 운전자, 교통이 빈번한 교차로에서 일시 정지를 하지 않은 운전자, 과로한 상태에서 운전한 사람도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다. 곧 범죄자다. 이 정도는 벌금 몇 십만 원에 불과하지만, “도로를 통행하고 있는 차마(車馬)에 뛰어오르거나 매달리거나 차마에서 뛰어내리는 행위”는 징역 1년 이하에 처할 수 있다. 위험한 행동이니 처벌한다지만, 사실 만원 버스에 승차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험한 일도 자주 벌어지기 마련이다.  

 

 예비군 동원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만약 전시나 사변이 났을 때라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예비군 훈련에 가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생각보다 범죄는 가까운 곳에 있고, 형사처벌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에는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형사처벌을 받는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의 범죄자가 양산되는 거다.

 

감옥에 보내는 대신, 벌금을 매기는 것은 좋다. 

 

 가벼운 죄를 지었다고, 모두 교도소에 보낼 수는 없다. 매년 100만 명씩 쏟아져 나오는 ‘범죄자’를 가둬둘 곳도 없다. 매우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범죄자를 교도소에 보내서 얻는 이익도 별로 없다. 범죄자는 가족과 떨어져 생계를 잃게 되고, 오히려 범죄에 오염되기도 한다. 개선효과도 거의 없다. 그래서 고안한 제도가 벌금형이다. 죗값에는 고통이 따라야 하는 법, 돈을 빼앗기면 당연히 고통스러울테니, 그것으로 죗값을 치르자는 거다. 원래 돈은 노동의 대가로만 얻을 수 있으니, 돈을 빼앗으면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것에 버금가는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국가는 벌금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교도소를 운영하는 비용이 들지 않아서 좋고, 범죄자 입장에서도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정도가 약한 처벌을 받으니 이익이다. 물론 경미한 범죄에만 벌금을 물린다. 그래서 살인범이나 강간범, 방화범이 벌금형을 받는 경우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범죄자는 감옥에 가는 자유형(自由刑) 대신 벌금형으로 처벌받는다. 전체 형사사건 중에서 90% 이상이 벌금형 처벌을 받고 있다.

 

33만 명이 교도소행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벌금을 내지 않으면 벌을 줄 수 없으니, 이런 경우엔 벌금액만큼 교도소에 가둬 강제노역을 하게 한다. 이걸 환형유치(換刑留置)라고 한다. 하지만 벌금형을 선고받는 100만 명이 넘는 사람 중에는 정말 형편이 딱한 사람들이 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벌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우리 공동체에 큰 위험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 사람들은 매년 4만 명이 넘는다. 2009년에는 ‘43,199명’이었다. 3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혀야 할 대기자는 지금도 33만 명쯤 된다.  

 

 벌금을 매기는 것도 너무 후진적이고, 불공정하다. 우리나라는 소득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똑같은 벌금을 매긴다. 하여 돈 많은 사람에게 벌금형은 처벌이 아니라 선처일 뿐이다. 재벌회장에게 물리는 몇 백만 원에는 어떤 고통도 뒤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돈 없는 사람은 감옥에 가야 한다. 누구나 똑같은 벌금을 내는 건, 공평하지 않다. 국민연금도 건강보험도 소득에 따라 다른 액수를 내는데, 유독 벌금만 소득과 상관없이 내라는 건, 부자만을 살피는 횡포이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차별일 뿐이다.  

 

벌금 매기는 방식이 후진적이고 불공정하다. 

 

 독일 등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일수(日數)벌금제를 채택하고 있다. 범죄자에게 ‘벌금 300만 원’ 식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 범죄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한다. ‘벌금 20 일’ 하는 식이다. 여기에다, 범죄자의 소득을 감안해 1 일 정액을 정한다. 벌금 일수는 5 일 이상 360 일 이하에 처할 수 있고, 1일 정액은 1유로에서 5,000 유로 사이에서 정할 수 있다. 가장 적은 벌금형은 5 유로(7천2백 원 정도), 가장 큰 벌금형은 1,800,000 유로(2십5억9천만 원 정도)가 되는 것이다. 소득이나 범죄의 정도에 따라 벌금형에서만 36만 배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독일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 2012년 스페인에서 과속운전으로 걸린 축구선수 미하엘 발락은 1만 유로(1천4백4십만 원)의 벌금을 받게 되었다. 발락은 변호사를 통해 자신이 이미 은퇴했다며, 이제는 소득이 없으니 1천 유로로 줄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발락이 현역 시절 매주 10만 유로의 주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독일에서부터 여론이 악화되었다. 그동안 많이 벌었으니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그러자 발락은 “변호사가 어리석은 주장을 해 즉시 해임했다.”며 “난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사과했다. 발락에게 적당한 벌금이 1만 유로인지, 1천 유로인지는 따져봐야겠지만, 적어도 스페인이나 독일에선 소득이 많은 사람은 더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 시민 일반의 ‘상식’이다.  

 

 한국의 법무부는 일수벌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언급만 몇 번 했을 뿐, 여태껏 외면하고 있다. 법무부가 나서지 않으면 국회에서 나서면 간단하지만, 국회의원들은 벌금을 못내 교도소에 가는 가난한 시민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벌금은 형이 확정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한꺼번에 모두 내야 한다. 일부 납부나, 납부 연기 신청도 가능하지만, 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조건도 까다롭다. 누구나 벌금을 나눠 낼 수 있다면, 그래서 목돈을 갑자기 마련해야 하는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벌금미납으로 교도소에 가는 사람들은 훨씬 줄어들게 될 거다.

 

 벌금형에는 집행유예가 없다. 봐주는 게 없다. 무조건 내야 한다. 징역형은 벌금형에 비해 더 무거운 범죄에 붙이는 더 무서운 형벌인데도 집행유예가 있지만, 더 가벼운 범죄, 더 가벼운 형벌에는 그런 제도가 없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처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사람은 교도소에 가지 않지만, 약간의 벌금이라도 내지 않은 사람은 교도소에 가야 한다. 모순이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보통의 경우 하루 5만원씩 쳐주는 교도소에 수감된다. 하루 5만원으로 정해진 건 20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지만, 액수를 올려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 10만원을 쳐주기도 하고, 때론 하루에 1억원 이상을 쳐주기도 한다. 판사 마음이다. 말은 노역수지만, 실제로 노역을 하는 벌금미납자는 거의 없다. 아예 일감이 없기 때문이다. 가둬놓은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데, 있더라도 그건 징역형 재소자들의 몫이다. 아무 일도 안하고, 그저 멍하니 감방 안에 앉아서 정해진 날짜만큼 살다 나가는 게 교도소 생활의 전부다. 노역수들에겐 가석방도 없다. 단 돈 1만원이라도 다 제할 때까지 교도소에 남아 있어야 한다.  

 

1993년생 벌금 미납 노역수 

 

 교도소에서 젊은 노역수를 만났다. 1993년생이라고 했다. 친구 차를 몰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벌금이 나왔다고 했다. 그에겐 벌금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고, 부모와 친지들이 대신 내주지도 못했다. 결국 교도소로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패배감과 모멸감이 어두운 낯빛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만약 벌금제가 소득에 따라 다르게 매겨지는 일수벌금제였다면, 그래서 그 청년의 경제적 형편에 맞는 벌금이 선고되었다면, 벌금을 나눠서 낼 수 있었다면, 아직 젊은 나이이니 기회를 더 주자는 의미에서 벌금형에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었다면, 아니 그 이전에 우리 사회가 이 잘못된 제도에 대해 조금의 관심이라도 갖고 있었다면, 그 청년은 교도소에 갇히지 않았을 거다.  

 

 잘못된 제도,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 매년 4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단지 돈 때문에 감옥에 가야 한다는 건 야만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잘못된 일이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빵을 훔쳐 19년이나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법이 그렇게 잔인할 수는 없다고 몸서리치는 사람들의 마음이 <레미제라블>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186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150년 전, 프랑스 이야기다. 하지만 2014년 한국에는 장발장처럼 억울한 ‘범죄자’들이 차고 넘친다. 매년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단지 돈이 없어서 교도소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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