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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벌금제에 대한 고민 3 - 법치(法治)인가 법치(法恥)인가 - 벌금제와 노역장 유치제도 등록일 2015.03.22 18:55
글쓴이 장발장은행 조회 1078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신축 건물이어서 그런 것일까. 서울남부교도소의 외양은 여느 학교 건물과 다를 바 없었다. 담장은 야트막했고, 담장 안과 밖 어디랄 것 없이 오월의 눈부신 햇살이 골고루 내리쬐고 있었다. 옛 영등포교도소가 이전한 서울남부교도소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이중, 삼중, 사중의 철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교육장에서 스무 명 남짓한 수인(囚人)들을 만났다. 창 밖에서 내리쬐는 오월의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지만, 수인들의 얼굴 표정은 밝지는 않았다.

 

애써 속울음을 참으며 조용히 울고 있는 사람들 

 

 어느 시인이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신경림)고 썼던가. 푸른 옷을 입은 수인들의 얼굴 표정에서 애써 속울음을 감추며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갈대’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인들과 두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시(詩)를 같이 읽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런 대화의 과정에서 나는 수인들이 누구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내 안의 열망과 의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인들과 함께 신경림과 이정록의 시를 읽었고, 브레히트와 타고르의 시를 읽었다. 이정록의 동시 「아니다」를 읽으면서는 “아니다”라는 구절이 나올 때마다 손을 불끈 쥐고 구호를 외치듯 ‘샤우팅’을 함께 했다. 그런 후에는 담장 안이든 밖이든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보다 용기가 있는 것이고 그런 용기 있는 행위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처음에 비해 수강생들의 얼굴 표정이 변하기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이상국의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를 읽은 후에는 몇몇 수강생들이 이 시가 말하는 전언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마도 다음의 시 구절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어느 수인은 이 시를 읽은 소감을 묻는 나의 질문에 참치 외항선을 타며 가족과 함께 단란한 생활을 하던 시절을 회상했으며, 어느 수인은 단속경찰의 음주측정을 거부해 4백만원의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 유치형’이라는 사실상의 징역을 살고 있는 자신의 사연을 말했다.  

 

“참, 잔인하십니다, 선생님!” 

 

 그날 서울남부교도소 특강에서 어느 수인이 악수를 내게 청하며 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내 손을 덥석 잡은 그 수인이 “참, 잔인하십니다, 선생님!”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그 수인은 이상국 시인의 시를 읽으며 수업 내내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수인은 너무나 소박하고 평범한 시적 표현이지만, 교도소 담장 안에 갇혀 있는 수인으로서는 너무나 ‘절실한’ 일상의 욕망을 가족들과 지금 당장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장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 내게 “참, 잔인하십니다”라며 돌직구를 날린 것이리라.  

 

 나는 인권연대가 수년 전부터 운영하는 <평화인문학 과정>에 문학 강사로서 참여해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진행된 <평화인문학 과정>은 벌금 미납으로 ‘노역장 유치’ 처분을 받은 수인들이 교육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노역장 유치 처분은 벌금 완납이 어려운 경우 노역장에 유치해서 환형(換刑) 처분을 하도록 한 관련 법률(형법 제69조)에 의거한 처분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몸빵’인 셈이다. 문제는 이들의 숫자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박범계 의원실이 법무부에 요청해 공개한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최근 5년간 노역장 유치 현황을 보면 ‘평균 41,000여명’에 달한다! 인권연대는 이 자료에 의거해 2013년부터 캠페인 <기억하라 43,199!>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시대에 장발장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43,199명이라, 너무나 많지 않은가? 우리 시대 ‘장발장’들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빵 한 조각 훔쳤다는 이유로 19년간 징역형을 살았던 장발장의 삶과 운명을 다룬 영화 <레미제라블>에 감동했던 나 자신이 문득 부끄러워진다. 이토록 많은 ‘장발장’들이 양산될 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 오히려 ‘양산하는’ 사회체제는 분명 문제가 있는 사회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로익 바캉은 『가난을 엄벌하다』에서 프랑스의 ‘마노 두라(mano dura, 강철 주먹)’ 정책은 일종의 ‘똘레랑스 제로’ 정책으로서 ‘시장주의-사회 보조 축소-형벌 확대’와 긴밀히 맞물려 있는 정책 형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보이지 않는 손’이 ‘철 장갑’을 끼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가난을 엄벌하는 사회 

 

 가난을 엄벌하는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수 없다. 우리는 『논어』에 나오는 “백성은 가난한 것에 화나는 것이 아니라 불공평한 것에 화나는 것이다(不患貧 不患均)”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법과 제도가 오히려 우리 시대의 ‘장발장’들을 양산하는 사회를 말의 온전한 의미에서 법치(法治)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사회의 법치는 어쩌면 법치(法恥)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상국 시인의 시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 불을 있는대로 켜놓고 /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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